[요가라마 홀리스틱 경복궁역] 마음으로 훑는 요가를 경험하다

흔히들 요가라고 하면 스트레칭이나 유연한 몸을 상상한다. 수련과 함께 얻을 수 있는 멋진 부가요소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표방되는 요가의 대표 이미지가 된 것은 참 아쉬운 부분이다. 어떤 이유로 시작했든 오랜 시간 요가와 함께한 사람들의 공통된 경험에 따르면 대체로 요가는 표상적인 것이 아니고 실천하는 것, 외적인 것보다는 내적인 것, 눈으로 쫓기보다는 마음으로 훑는 것이다. 결코 보여지는 몸의 형태나 피트니스가 아니라는 말이다. 운동이나 다이어트 목적으로 요가를 시작했더라도 요가매트 위에 올라서 나와 호흡과 함께하는 온전한 시간을 일상에 들여놓았다면 요가의 진면목을 시작과 같은 마음에 두지 않을 것이다. 그 시간이 반복적이고 규칙적이면서 제대로 된 알아차림이 있다면 앞서 말했듯 아름답고 건강한 몸을 얻는 것은 부가적인 획득일 뿐인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실천으로서의 요가, 내적 경험으로서의 요가, 마음으로 훑는 요가라는 정성적이고 어려운 표현을 썼지만 구체적으로 아사나(동작)이라기보다는 프라나야마(호흡)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다. 호흡을 카운팅하면 내 몸에 집중할 수 있고 몸의 가장 작은 움직임인 호흡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 수 있다. 호흡을 길고 깊게 하면 근육은 이완되거나 긴장되면서 자연스럽게 스트레치되고 조율된다. 아사나(동작)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수련시간은 몸을 늘리고 나 자신과 싸우는 시간이 되고 프라나야마(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마음과 몸의 공간이 편안하게 확장되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러한 알아차림은 적절한 가이드와 약간의 집중만 있다면 모두가 경험할 수 있다.

요가 안에서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이끌 수 있는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렇게 단언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경험했기 때문이다. 말의 표현이나 본질은 요가라마홀리스틱 원장 선생님의 것을 빌려썼지만 원장 선생님이 우리에게 공유하고자 했던 무언가를 나도 느꼈고 내 경험이 되었다. 요가라마홀리스틱을 돌아보면 수련생들이 이 경험을 자기 것으로 체득할 수 있도록 마음 보채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아주 천천히 공을 들여서 이끌어주었던 것 같다. 천천히 각자의 호흡 안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말이다.

내가 대단히 기분 좋았던 그 날 밤에 느꼈던 황홀감과 그 느낌을 공유할 때 윤범 선생님의 뿌듯한 무드가 만연한 얼굴이 떠오른다. 홀리스틱에서 수련하면서 호흡을 집중적으로 신경써왔지만 몸 안쪽의 변화는 아직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래도 시간이 가면서 한 동작에 기본 다섯 카운팅이었던 호흡이 조금씩 네 호흡, 세 호흡까지 줄었다. 뭔가 몸의 가장 바깥부터 아주 천천히 정렬되어 나가는 느낌이었다. 일련의 정체기에 있다가 바로 그 날. 흉곽은 비틀어져 조여오고 균형을 잡기 위해 온몸의 근육들이 팽팽하게 긴장할 때 힘으로 버티지 않고 아득바득 호흡으로, 다른 어떤 날보다 호흡에 대한 집중도가 높게 느껴지던 날이었다. 아쉬탕가 클래스였는데 거의 모든 동작을 평균 세 호흡으로 할 수 있었고 집중해서 호흡한 그 다음 동작에서 바로 바로 몸의 변화가 느껴졌다. 몸이 중력의 방향으로 흐르는 게 아니라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한결 가볍고 완성된 자세를 취할 수 있었다. 바로 직전의 동작과 호흡이 지금의 동작으로, 그 다음 동작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흘렀던 것 같다. 예전에는 안 되는 동작을 완성하기 위해서 더 긴장하고 힘을 주어 갇힌 상태로 그 안에서 호흡했다면, 그 날은 호흡을 함으로 경계가 모호해지고 몸과 동작이 연결되어 흐르는 느낌이었다. 아… 이걸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사바사나로 수련이 끝나고 가벼운 몸과 함께 엄청난 황홀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느낌을 잊어버리기 싫어서 요가원에서 꽤 오래 쉬다 나왔다. 요가원에서 나와서는 웃으면서 집에 걸어갔다. 좀 이상해 보일수도 있는데 그 날은 정말 그랬다. 다음 날 그런 경험을 또 하고 싶어서 컨디션 난조에 두 시간 연속 수련했다가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갔다는 후문도 있지만… 몇 일 후 수련 때는 평소 무난했던 동작들은 두 호흡으로 거뜬히 보다 완성된 형태를 취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내가 잊고 싶지 않은 경험이기도 하고 요가라마홀리스틱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더욱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계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배우고 알아간다는 것이 깊어진다는 건 알면서 더 좋아하게 되고 더 사랑하게 되기 때문인데 그 과정에 애정과 어떤 맹목적인 믿음이 없으면 그 알아가는 시간들을 견고히 지날 수 없다. 나는 요가라마홀리스틱에서 공유하고자 하는 방향을 경험했고 그에 따라 조금 더 확신이 생겼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그릇된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는 믿음과 나라는 존재가 알고자 하는 가치에 대해 공유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너무나 빨리 변하고 많은 것을 요구하는 지금, 그들과 내가 가진 가치를 잃지 않는 힘을 기를 수 있기를.

얼마 전 윤범 선생님의 왜 요가를 하냐는 질문에 부끄럽기도 하고 유치하기도 한 대답을 했다.

“요가를 할 때 제가 가장 아름답게 느껴져요.”

꽤 오해사기 좋은 문장이어서 재빨리 덧붙이기를,

“제 자신이 가치 있고 귀한 사람으로 느껴집니다. 요가 이전에는 그 무엇도 제게 진정으로 그런 느낌을 준 것이 없었어요.”라고 하고 선생님은 잔잔히 동의해 주셨다.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어디까지 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조금 더 지금을 바라보는 내가 되기를, 귀한 나와 요가가 연결해준 귀한 사람들과 조금 더 따뜻하게 지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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