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라마 홀리스틱 경복궁역] 요가라는 움직임

사실 요가를 시작한 것은 꽤 오래 전이다. 6년 전 인도로 배낭여행을 가게 되면서 운좋게 요가의 본고장에서 시작을 할 수 있었다. 북인도 리쉬께쉬에 근 한 달간 머물면서 요가를 했는데, 아쉬람을 옮겨가며 데일리 클래스를 들어가며 이러저러한 종류의 요가를 경험 했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서는 그 흐름을 타기가 어려웠다.

이유인즉슨, 나에게 요가란? 운동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운동이란? ‘경쟁’해서 ‘승리’해야 하는 것이다(비단 운동 뿐만이 아니라 삶의 많은 부분에서 그렇게 살아왔다). 성취와 인정은 내게 중요한 자극제이다. 승리를 위한 움직임들은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어디서 무엇을’ 느끼는지 굳이 알 필요가 없다. 어떻게든 움직여서 이기면 되니까. 힘들어도 밀어붙이면 된다. 지금 나의 상태, 나의 기분, 나의 감각 따위는 중요치 않다. 오로지 승리!

이렇게 살아온 사람이 유연하지도 않은 몸으로 되지도 않는 동작들을 하며 끙끙대는 것이 싫었다. 자존심도 상하고 멋있지도 않으니 어떡하랴. 사실 나의 성취에 대한 욕망과 남다른 적응력으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리 나쁘지 않은 동작들이었을 것이다. 인도에서도 원래 요가를 했던 사람인 줄 알았다고 했으니까(이것은 내가 유연해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그 동작을 해내려고 악을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동작들을 취하는 내 마음은 어땠을까. 어디가 어떻게 스트레칭 되고 있는지도 몰랐고, 아사나가 주는 느낌이 어떤 감각인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저 사람처럼 되기를 바랐고 저들보다 잘하기를 바랐을 뿐. 나는 나 자신과도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하니 요가가 무슨 재미가 있었겠는가. 이길 대상이 없는데 말이다. 누구를 이겨야 어디가서 자랑도 하고 인정도 받을 것 아닌가! (물론 나 자신과 싸워 이겨서 매일 더 나은 동작을 하는 나를 성취할 수 있지만 이제껏 그래왔단 걸 알게 되고는 더이상 그런 방식으로는 살고 싶지 않았다) 인도에서 요가를 하며 가장 감명깊게 들은 말은 ‘억지로 하지 말되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에 감동은 받았지만 실천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도록 이끌어주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렇다보니 항상 내 마음은 예전처럼 움직일 뿐이었다. 몇 년 간 지방에서 지내며 요가를 다녔지만 이런 마음의 상태로는 재미도, 감동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냥 스트레칭이고 운동일 뿐이었는데 그렇다면 굳이 재미없는 요가를 할 까닭이 없었다. 차라리 배드민턴이나 탁구를 치고 싶었다. 그렇게 요가와는 점점 멀어지고 집에서 스트레칭 삼아 조금씩 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가 요가라마 홀리스틱에 가게 되었다. 이 ‘그러다가’에는 많은 과정이 깃들어 있다. 예전에 원장님이 한성대에 계셨을 때 현재 아율 마인드워크 원장님이 하시는 심리프로그램을 들었고, 그로부터 아주 큰 도움을 받았다. 이후로도 계속 프로그램을 듣고 상담을 받고 싶었지만 두 분께서 해외로 가셨고 나는 지방으로 가는 바람에 아쉽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면서 나는 전주에서 지내며 공부를 했고 운동삼아 요가를 했지만 앞서 쓴 것처럼 별다른 신통함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때 선생님들께서도 한국으로 들어오셔서 새로운 요가원을 내신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무척 기뻤다.

실은 요가보다 심리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다가 기회가 생겨서 원장님의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단 번에 ‘이것이 요가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단 번이었다. 신기하기도 하지, 왜 그동안 이걸 몰랐을까. ‘이렇게 하는거구나, 요가는. 그래서 마음공부랑 관련이 있는 거구나’

그만큼 요가는 티칭이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나같은(?) 사람들은 동작에 매달리고 집착하기 때문에 몸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신경쓸 겨를이 없다. 그런데 YB 원장님께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동작보다 감각과 호흡에 집중하라고 말씀하신다. 그 말을 따라가다보면 신기하게도 정말 그 지점에서 그 감각이 느껴진다. 오랜 기간 수행하시며 얻은 체득이란 것이 이런거구나 하며 새삼 놀라게 된다. 

이제 동작을 ‘잘’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돼버렸다. 나는 이제야 내 몸이 이런 저런 아사나를 할 때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게 됐다. 그 느낌들과 접촉할 수 있게 된 것이다(이것은 내게 굉장한 발견이며 매번 새롭고 놀라운 만남이다). 그러다보니 신기하게도 아사나가 나날이 잘된다? 아사나할 때 호흡하면서 이완되는 몸을 느끼면 크게 무리하는 일이 없어지는데 동시에 동작이 깊어지면서 억지로 하려고 할 때보다 몸이 더 풀린다.

요가라마 홀리스틱을 만난 것을 생의 대운으로 여기고 있다. 오글거리지만 진심이다. 이 곳에서는 몸과 마음을 다룬다. 매주 금요일에 아율 마인드워크에서 진행되는 인사이트 그룹에도 참여하고 있는데 아주 큰 도움을 받고 있다. 이러저러한 나와 만나는 것은 민망하기도 하지만 여기에서는 있는 그대로, 일어나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경험은 일상이라는 카오스 안에서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알아차려서 중심을 잡을 수 있게끔 도와준다. 심신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 둘의 조화로움과 균형을 여기에서 배운다.

사실 경복궁은 우리집에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다. 가고 싶다. 가야한다. 요가와 명상/알아차림을 통해서 (결과보다) 과정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더불어 몸의 감각과 감정에 좀 더 열린 마음을 갖게 됐다. 이러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 좋다는 말을 이렇게도 길게 쓴다. 사실 이런 글은 나를 너무 드러내므로 판단 당할까봐 두려운 마음에 잘 안 쓰는 편인데(옛날이라면 다 써놓고 결국 안 올리거나 업로드하곤 이내 삭제해버렸을 것이다. 이 글도 사실 오래 묵혔다), 경험해보고 좋아서 쓰는 글인만큼 누군가에게는 적은 도움이나마 되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용기를 내서 버튼을 클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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